상동의 짝, 대구 달성광산 텅스텐 역사와 대구텍 유산

상동의 짝, 대구에 있었던 또 하나의 텅스텐 광산

세계 중석시장의 8%, 자유진영 공급량의 10~20%. 냉전 시절 한국이 감당했던 텅스텐 점유율입니다. 그런데 이 숫자를 만든 주역이 상동광산 하나만은 아니었습니다. 대구 달성군에도 텅스텐 광산이 있었고, 두 광산이 양 날개처럼 움직이며 한 시대의 국가 경제를 떠받쳤습니다. 상동광산이 32년 만에 부활하며 다시 조명받는 지금, 잊혀진 나머지 한 축, 달성광산의 이야기를 꺼내볼 때입니다.

텅스텐 카바이드 합금과 철망간중석 원석 사진
텅스텐 카바이드 및 원석 실물 사진 - 광물백과

왜 하필 지금, 달성광산을 다시 꺼내드나

상동광산 재가동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바로 대구텍입니다. 워런 버핏이 소유한 이 초경절삭공구 기업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국영기업 대한중석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대한중석의 역사는 상동광산 하나가 아니라, 상동과 달성이라는 두 광산이 함께 써 내려간 이야기입니다. 지금 텅스텐이 자원안보의 핵심 카드로 재조명받는 시점이야말로, 이 두 광산이 어떻게 한 회사 안에서 역할을 나눠 맡았는지 되짚어볼 만한 타이밍입니다.

대한중석은 1952년 국영기업체로 출발해 1962년 상장됐고, 1960년대에는 회사의 수출액이 국가 전체 수출액의 약 60%까지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존재였습니다. 이 회사가 세계 최대의 단일 광구였던 상동광산과 함께 주축으로 삼았던 곳이 바로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에 있었던 달성광산이었습니다.

캐는 광산과 만드는 광산, 역할이 나뉘다

달성광산의 시작은 상동광산과 정확히 같은 해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파이프상·망상광상 형태의 이 광산은 1916년 강원도 영월의 상동광산과 함께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경영하던 시절에는 부진을 면치 못했지만, 광복과 동시에 중석광산으로 본격 개발되면서 번창기를 맞았습니다. 한때는 전국 최고의 채굴량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75년 이후 매장량이 소진되면서 달성광산은 폐광 상태에 놓였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전환이 일어납니다. 1974년 광업권자였던 대한중석광업주식회사의 본사가 서울에서 이곳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로 옮겨오면서, 광산은 새로운 체제로 탈바꿈했습니다. 더 이상 원석을 캐는 곳이 아니라, 상동광산에서 캐낸 원광석을 들여와 가공하는 생산 기지로 역할이 바뀐 겁니다.

이 시기 달성 공장에서 생산된 품목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합니다. 산화텅스텐, 탄화텅스텐, 분말·금속텅스텐, 분말·초경합금은 물론 금속비스무트, 산화몰리브덴, 페로몰리브덴, 차질산비스무트, 금·은까지 만들어냈습니다. 즉 상동광산이 '원료 채굴'을 담당했다면, 달성광산은 이를 받아 '고부가가치 소재 가공'을 담당하는 구조였던 셈입니다. 이렇게 생산된 제품은 국내 각 산업체에 공급되는 동시에 세계 시장으로 수출됐습니다.

광산에서 산업단지로, 자산은 사라지지 않았다

1975년 완전히 폐광된 이후 달성광산이라는 이름은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 부지와 인프라, 그리고 무엇보다 축적된 기술력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이 부지에는 극동아시아 최대의 초경절삭공구 및 관련 산업제품 생산기업인 대구텍(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원석을 캐던 자리가 그 원석으로 만든 초경합금 절삭공구를 생산하는 첨단 제조 거점으로 진화한 셈입니다.

대구텍의 전신인 대한중석은 1994년 민영화 정책에 따라 거평그룹에 매각됐다가, 1998년 거평그룹 부도 이후 워런 버핏이 소유한 이스라엘계 IMC그룹에 전량 인수돼 지금의 대구텍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원료 채굴 기능(상동광산)과 소재 가공 기능(달성광산·대구텍)이 이후 서로 다른 소유 구조로 갈라졌다는 사실입니다. 상동광산은 캐나다 기업 알몬티가 지분 100%를 확보해 32년 만에 재가동에 나섰고, 달성광산 부지의 가공 역량은 대구텍이라는 형태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상동광산과 달성광산, 무엇이 달랐나

구분 상동광산 달성광산
위치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개광 시점 1916년 노두 발견, 1923년 개광 1916년 상동광산과 함께 개발 시작
역할 원광 채굴 원광 가공(정광→가공품 생산)
주요 생산품 텅스텐 원광·정광 산화텅스텐, 탄화텅스텐, 초경합금 등
폐광 시점 1994년 1975년
폐광 원인 한중 수교 이후 저가 중국산 유입 매장량 소진
현재 상태 2026년 3월 32년 만에 재가동 부지에 대구텍(주) 입주
소유 구조(현재) 캐나다 알몬티 지분 100% 워런 버핏 소유 IMC그룹 계열(대구텍)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위키백과, 국내 언론 보도를 종합해 재구성했습니다.)

한국 산업이 이 역사에서 읽어야 할 것

달성광산의 이야기가 오늘날 한국 산업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자원안보는 '캐는 능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상동광산이 아무리 세계적 매장량을 가지고 있어도, 이를 산화텅스텐·탄화텅스텐·초경합금 같은 고부가가치 소재로 가공하는 능력이 없다면 원자재 수출국 이상의 위상을 갖기 어렵습니다. 대한중석이 상동에서 캐고 달성에서 가공하는 완결된 밸류체인을 구축했던 것처럼, 지금 상동·쌍전광산 재가동을 이야기할 때도 채굴 이후의 가공·제련 역량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알몬티가 내세우는 '코리안 트리니티' 구상, 즉 채굴부터 제련까지 국내에서 완결하겠다는 그림은 사실 대한중석이 반세기 전 이미 시도했던 모델과 닮아 있습니다. 다만 그때는 국영기업 하나가 원료부터 가공까지 전부 틀어쥔 구조였다면, 지금은 상동광산(캐나다 자본)과 쌍전광산(국내 자본), 그리고 초경공구 가공 역량(대구텍 등 기존 산업 기반)이 서로 다른 주체로 나뉘어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결국 한국이 진정한 텅스텐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이 흩어진 역량들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상동광산의 재가동 배경은 [광물백과 상동광산 편]에서 자세히 다뤘으니 함께 비교해서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FAQ

Q1. 달성광산은 상동광산과 어떤 관계였나요? 두 광산 모두 1916년 함께 개발이 시작됐으며, 대한중석이라는 같은 회사 아래서 상동은 원광 채굴을, 달성은 원광 가공을 담당하는 상호보완적 역할을 했습니다.

Q2. 달성광산은 왜 폐광됐나요? 1975년 이후 매장량이 소진되면서 채굴 자체가 어려워져 폐광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가격 경쟁력 문제로 폐광한 상동광산과는 다른 이유입니다.

Q3. 달성광산 폐광 이후에는 어떻게 됐나요? 폐광과 비슷한 시기 대한중석 본사가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원광 채굴 대신 상동광산에서 들여온 원광을 가공하는 생산 기지로 전환됐고, 이후 지금의 대구텍(주)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Q4. 대구텍은 지금도 텅스텐과 관련이 있나요? 네. 대구텍은 초경절삭공구 등 텅스텐 카바이드 기반 제품을 생산하는 극동아시아 최대 기업으로, 달성광산 시절의 가공 기술 유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Q5. 달성광산의 사례가 지금의 텅스텐 공급망 논의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채굴 역량뿐 아니라 가공·제련 역량까지 함께 갖춰야 완결된 자원안보 체계가 만들어진다는 점입니다. 상동·쌍전광산 재가동 논의에서도 이 가공 단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줍니다.



막시

쉽고 정확하게 전하는 블로거, MAKSI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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