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머던 광산, 159년 만에 세 번 무너지고서야 안정을 찾았다.

159년 전 발견된 광산이, 세 번 무너지고서야 안정을 찾았다

1867년, 영국 데번주 플리머스 인근 들판에서 텅스텐 광맥이 발견됐습니다. 그런데 이 광산이 실제로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무려 159년이 걸렸습니다. 그사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세 번의 좌절이 있었습니다. 앞서 살펴본 엘멧그룹과의 18억 달러 규모 공급계약, 그리고 영국 국부펀드의 지분 투자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헤머던 광산의 굴곡진 역사를 이번 편에서 짚어보겠습니다.

헤머던 광산의 오래된 건물 잔해 클로즈업
헤머던 광산 - 150년 역사의 흔적

두 번의 전쟁, 두 번의 반짝 특수

헤머던 광상은 1867년 처음 발견됐지만, 실제로 상업적 채굴이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1918~1919년,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였습니다. 이 시기 세계적으로 텅스텐이 부족해지면서, 당시 24톤의 산화텅스텐(WO3)이 생산됐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자 수요도 함께 사라지며 채굴은 다시 멈췄습니다. 앞서 2차대전 편에서 살펴봤던 포르투갈·스페인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텅스텐이라는 금속은 유독 전시에만 반짝 주목받는 운명을 반복해왔습니다.

두 번째 기회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군수용 무기 생산에 막대한 텅스텐이 필요해지면서 1943~1944년 헤머던은 다시 채굴에 들어가 85톤의 WO3를 생산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수요가 급감했고, 광산은 1944년 다시 문을 닫았습니다.

150년, 네 번의 붐과 버스트

헤머던 광산의 역사를 정리하면, 반복되는 좌절의 패턴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시기 사건
1867년 광상 최초 발견
1918~1919년 1차대전 특수로 첫 상업 채굴, WO3 24톤 생산
1943~1944년 2차대전 특수로 재가동, WO3 85톤 생산 후 종전과 함께 폐쇄
1977~1986년 AMAX사 탐사·타당성 조사 진행, 그러나 주석 시장 붕괴로 철수
2007~2019년 울프미네랄스 인수, 2018년 채굴 재개(WO3 3,735톤 생산), 2019년 파산관재 돌입
2019년 텅스텐웨스트, 540만 파운드에 자산 인수(직전 투입된 매몰비용만 1억 7,000만 파운드 이상)
2022년 채굴 재개
2026년 영국 국부펀드 7,100만 파운드 투자로 지분 7.42% 확보, 엘멧그룹과 8년간 18억 달러 규모 공급계약 체결

세 번째 시도의 좌절, 그리고 헐값 인수

전쟁 특수 이후에도 헤머던을 되살리려는 시도는 계속됐습니다. 1977년부터 1986년까지 AMAX사가 2만 5,400미터에 달하는 시추를 진행하며 초기 자원량을 확정하고 타당성 조사까지 마쳤지만, 정작 개발 허가를 받은 직후 주석 시장이 붕괴하며 발을 뺐습니다. 이후 다시 20년 넘게 잠들어 있던 이 광산은 2007년 울프미네랄스가 인수하면서 세 번째 기회를 맞았습니다. 2015년 개발 허가를 받고 2018년 채굴을 재개해 3,735톤의 WO3를 생산했지만, 이번에는 회사 자체가 2019년 파산관재 절차에 들어가는 결말을 맞았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이 있습니다. 텅스텐웨스트는 이 자산을 단 540만 파운드에 인수했는데, 그 직전까지 투입된 매몰비용만 1억 7,000만 파운드가 넘었습니다. 즉 앞선 여러 투자자들이 이미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어 채굴 인프라와 인허가, 기술적 기반을 갖춰놓은 상태에서, 정작 마지막 결실은 헐값에 새로운 주인에게 넘어간 셈입니다. 영국지질조사국이 헤머던을 세계 4위 규모의 텅스텐 광상으로 평가할 만큼 자원 자체의 가치는 확실했지만, 그 가치를 실제 수익으로 연결하는 과정에서는 매번 다른 이유로 발이 걸렸던 것입니다.

이번엔 정부가 지분까지 들어왔다

2026년, 헤머던은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영국 정부는 국가부기금을 통해 텅스텐웨스트에 최대 7,100만 파운드를 투자하며 지분 7.42%를 확보했는데, 이는 앞선 세 번의 시도와 확연히 다른 지점입니다. 과거에는 민간 자본이 단독으로 부침을 거듭했다면, 이번에는 영국 정부가 직접 지분을 보유한 주주로서 이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후 이어진 엘멧그룹과의 8년간 18억 달러 규모 공급계약은, 연간 1,000톤의 WO3 함유 물량을 미국과 영국의 텅스텐 가공·제조 공급망으로 흘려보내는 장기적인 통로를 마련했습니다.

네 번째는 다를 것인가

여기서 짚어야 할 비판적 시각이 있습니다. 헤머던의 역사는 앞서 아이다호 편에서 살펴봤던 스티브나이트 광산지구의 패턴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전쟁이나 위기 상황에서 반짝 개발됐다가, 그 필요성이 사라지면 곧바로 방치되는 흐름이 100년 넘게 반복되어 온 것입니다. 1977년의 시도는 시장 가격 붕괴로, 2018년의 시도는 회사 자체의 재무 부실로 각각 무너졌습니다. 이런 전례를 고려하면, 이번 네 번째 시도 역시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단정하기는 이릅니다.

다만 이번에는 몇 가지 다른 요소가 있습니다. 영국 정부가 단순한 인허가 승인자가 아니라 지분을 보유한 이해당사자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미국 정부의 핵심광물 확보 전략과 맞물려 엘멧그룹이라는 안정적인 수요처를 8년 장기계약으로 확보했다는 점입니다. 앞서 2차대전 편에서 살펴봤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중립국의 지위를 이용해 양 진영에 텅스텐을 팔았던 것과 달리, 이번 헤머던의 이야기는 영국이 자국의 전략 자산을 자국과 동맹국의 산업에 직접 공급하는 구조를 만들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결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텅스텐 시장 특유의 가격 변동성과 정치적 우선순위 변화라는 근본적인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 있어, 이번 시도가 과거 세 번의 전철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지는 앞으로 몇 년의 실적을 지켜봐야 할 문제입니다.

헤머던 광산의 현대식 채굴 장비 클로즈업
헤머던 광산 재가동 - 네 번째 기회를 맞은 채굴 현장

한 광산이 품은 두 가지 자원

헤머던이 흥미로운 또 다른 이유는 이곳이 텅스텐만이 아니라 주석과 골재까지 함께 생산하는 다금속 광상이라는 점입니다. 앞서 다금속 광상의 경제학 편에서 살펴봤던 부산물 신용 개념이 이곳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실제로 1980년대 세 번째 시도가 무너진 결정적 원인 중 하나가 주석 시장의 붕괴였다는 점은, 텅스텐 하나만 보고 사업성을 평가했다가는 놓치기 쉬운 리스크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텅스텐 가격이 아무리 좋아도 함께 생산되는 다른 광물의 시장이 무너지면 광산 전체의 경제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교훈이, 150년이 넘는 헤머던의 역사 속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셈입니다.

FAQ — 헤머던 광산의 역사에 대해 자주 묻는 질문

Q1. 헤머던 광산은 언제 처음 발견됐나요? 1867년 영국 데번주 플리머스 인근에서 최초로 발견됐으며, 실제 상업 채굴은 그로부터 50여 년 뒤인 1918~1919년 제1차 세계대전 특수 때 시작됐습니다.

Q2. 헤머던은 왜 여러 차례 문을 닫았나요? 1차대전과 2차대전 당시에는 전쟁이 끝나며 수요가 급감해 폐쇄됐고, 1980년대에는 주석 시장 붕괴로, 2019년에는 운영사인 울프미네랄스의 파산관재로 각각 중단됐습니다.

Q3. 텅스텐웨스트는 헤머던을 얼마에 인수했나요? 2019년 약 540만 파운드에 인수했는데, 이는 직전 소유주들이 이미 투입한 1억 7,000만 파운드가 넘는 매몰비용에 비하면 매우 낮은 가격이었습니다.

Q4. 영국 정부는 헤머던 프로젝트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나요? 국가부기금을 통해 텅스텐웨스트에 최대 7,100만 파운드를 투자해 지분 7.42%를 확보하며, 단순 인허가 승인자를 넘어 주주로서 직접 참여하고 있습니다.

Q5. 이번에는 과거의 실패가 반복되지 않을까요? 아직 단정하기는 이릅니다. 다만 정부의 지분 참여와 엘멧그룹과의 8년 장기 공급계약이라는 안정적 수요처 확보는 과거 세 번의 시도와 다른 지점으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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