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팔던 청년이, 세계 최대 텅스텐 광산의 주인이 됐다
앞선 누이파오 광산 편에서 다뤘던 마산하이테크머티리얼즈(MSR), 그 모기업인 마산그룹의 출발점은 놀랍게도 광업과는 전혀 무관했습니다. 1990년대 러시아 땅에서 라면을 팔던 한 베트남 유학생의 작은 사업이,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중국 밖 세계 최대 텅스텐 광산을 소유한 기업의 뿌리였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라면 봉지에서 텅스텐 광석으로, 마산그룹이 걸어온 뜻밖의 경로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소비재와 중공업이라는 서로 아득히 먼 두 산업을 한 기업이 넘나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이야기는 충분히 눈여겨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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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그룹의 시작 - 라면 사업에서 출발한 기업사 |
러시아에서 시작된 라면 사업
마산그룹의 창업자 응우옌당꽝은 옛 소련 시절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 모스크바의 플레하노프 러시아경제대학에서 MBA를, 벨라루스 국립과학원에서 기술과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가 사업을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러시아에 거주하는 베트남 교민들에게 라면을 판매하는 소박한 사업이었습니다. 사업은 예상외로 빠르게 성장해 월 3천만 봉지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커졌고, 이후 대두·생선·고추 소스로도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전성기 시절 라면과 고추 소스 매출이 1억 달러에 달했을 정도로, 러시아 현지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전해집니다. 베트남인 3천만 명을 넘어 러시아인 1억 4천만 명에게도 라면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그의 회고는, 이 사업이 단순히 교민 대상 틈새시장을 넘어섰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베트남으로 돌아와 소비재 기업을 세우다
2001년 응우옌당꽝은 마산 브랜드를 이끌고 베트남으로 돌아왔습니다. 흥미롭게도 베트남에서 처음 선보인 주력 제품은 라면이 아니라 2002년 출시한 '친수(Chin-su)' 간장 브랜드였습니다. 이후 회사는 2004년 '마산 해운 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정식 법인을 설립했다가, 2009년 마산그룹으로 사명을 바꾸고 호치민증권거래소에 상장했습니다. 이 시기 마산은 간장, 피시소스, 라면, 조미료라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네 가지 소비재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며 베트남을 대표하는 민간 대기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무렵 응우옌당꽝은 베트남의 주요 민간은행인 테크콤뱅크 이사회에도 참여하며 금융업으로도 발을 넓혔는데, 이는 이후 광업 진출에 필요한 대규모 자본을 조달하는 기반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마산그룹의 주요 연혁
| 시기 | 사건 |
|---|---|
| 1990년대 | 러시아에서 라면 사업 시작, 월 3천만 봉지 생산 규모로 성장 |
| 2001년 | 응우옌당꽝, 베트남으로 귀환 |
| 2002년 | 친수(Chin-su) 간장 브랜드 출시 |
| 2004년 | 마산 해운 주식회사로 법인 설립 |
| 2009년 | 마산그룹으로 사명 변경, 호치민증권거래소 상장 |
| 2010년 | 누이파오 텅스텐 광산 지분 인수 |
| 2014년 | 마산리소스 설립, 가공 공장 가동 시작 |
소비재 기업이 광산에 뛰어들다
이 연혁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전환점은 2010년입니다. 라면과 간장, 피시소스로 성장해온 소비재 기업이 이 해에 누이파오 텅스텐 광산의 지분을 인수하며 전혀 다른 산업으로 발을 넓혔습니다. 2014년에는 마산리소스가 정식으로 설립되고 가공 공장이 가동에 들어가며, 앞선 편에서 살펴봤던 채굴부터 APT·산화텅스텐 화학제품까지 이어지는 통합 가치사슬의 기틀이 마련됐습니다. 라면 봉지를 만들던 회사가 불과 몇 년 사이에 전략광물 기업으로 변신한 셈입니다.
왜 하필 광업이었을까
여기서 짚어야 할 균형 잡힌 시각이 있습니다. 소비재 기업이 광업으로 사업을 다각화한 구체적인 전략적 동기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자료는 많지 않습니다. 다만 창업자가 기술과학 분야 박사 학위를 가진 이력이 있다는 점, 그리고 베트남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텅스텐 매장량을 가진 나라라는 지리적 이점이 맞물렸을 가능성을 짐작해볼 수 있을 뿐입니다. 확실한 것은 라면 제조와 광물 채굴·정련은 기술적 난이도, 자본 집약도, 규제 환경 모두에서 완전히 다른 산업이라는 사실입니다. 식품 사업에서 쌓은 대량생산·유통 노하우가 광업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며, 실제로 이런 이종 산업 간 다각화는 성공 사례만큼이나 실패 사례도 많은 위험한 시도로 꼽힙니다. 마산그룹의 경우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전환을 이뤄낸 것으로 평가받지만, 이것이 모든 소비재 기업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성공 공식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다각화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마산그룹이 광업 하나만 단독으로 밀어붙인 것이 아니라, 이미 탄탄하게 다져둔 금융·유통 기반 위에서 새 사업을 얹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업자는 광업 진출 이전부터 베트남의 주요 민간은행인 테크콤뱅크의 부회장직을 맡아왔고, 마산그룹 자체도 소매유통 계열사를 함께 운영하는 복합 기업 구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즉 텅스텐이라는 완전히 낯선 산업에 뛰어들면서도, 그 뒤를 받쳐줄 자본 조달 능력과 경영 인프라는 이미 상당 부분 갖춰진 상태였다는 뜻입니다. 이는 단순히 '용감한 도전'이라는 서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다각화 이전에 쌓아둔 기반의 힘이 함께 작용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베트남 억만장자들의 흥미로운 공통점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응우옌당꽝만이 아니라, 베트남 최고 부호로 꼽히는 빈그룹의 팜녓브엉 역시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미비나(Mivina)'라는 브랜드로 라면 사업을 시작해 큰 성공을 거둔 뒤 베트남으로 돌아와 대기업을 일궜습니다. 동유럽에서 유학하거나 거주하던 베트남 청년들이 라면이라는 간단한 식품 사업으로 첫발을 뗀 뒤, 훗날 각자 전혀 다른 산업(빈그룹은 부동산·자동차, 마산그룹은 유통·금융·광업)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는 공통된 패턴은, 베트남 재계에서 '라면'이 창업의 상징적인 출발점처럼 여겨지는 이유를 잘 보여줍니다. 자본도 인맥도 부족했던 유학생 신분에서, 가장 진입장벽이 낮으면서도 동포 공동체라는 확실한 초기 수요를 가진 라면 사업이 공통된 출발선이 됐다는 점은, 이후 각자가 완전히 다른 산업으로 뻗어나갔다는 사실과 대비되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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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그룹의 전환 - 소비재에서 전략광물 기업으로 |
FAQ — 마산그룹과 텅스텐 사업에 대해 자주 묻는 질문
Q1. 마산그룹은 원래 어떤 사업으로 시작했나요? 1990년대 러시아에서 베트남 교민을 대상으로 한 라면 판매 사업으로 시작했으며, 이후 대두·생선·고추 소스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Q2. 마산그룹은 언제부터 텅스텐 사업에 뛰어들었나요? 2010년 누이파오 텅스텐 광산의 지분을 인수하며 광업에 진출했고, 2014년 마산리소스를 설립해 가공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Q3. 마산그룹의 창업자는 누구인가요? 응우옌당꽝으로, 러시아에서 MBA를, 벨라루스에서 기술과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90년대 라면 사업으로 첫 창업을 했습니다.
Q4. 마산그룹 외에 라면 사업으로 시작한 베트남 기업인이 또 있나요? 네, 베트남 최고 부호로 꼽히는 빈그룹의 팜녓브엉 역시 우크라이나에서 '미비나' 브랜드로 라면 사업을 시작해 성공을 거둔 뒤 베트남으로 돌아와 대기업을 일궜습니다.
Q5. 소비재 기업이 광업으로 다각화하는 것은 흔한 일인가요? 일반적이지는 않습니다. 식품·소비재 산업과 광업은 기술적 난이도와 자본 집약도, 규제 환경이 크게 달라, 이런 이종 산업 다각화는 성공만큼이나 실패 사례도 적지 않은 위험한 시도로 꼽힙니다.

